<인지공리02_1>

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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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력 삼분법 코어 명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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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피만.기반지력
주입된.태그나열
새의이름과.다른
새를보는것.분별

최종정답.부존재
당연시.되는정답
이것이.모든가추
지력삼분의.코어

1. 콩자루 하나로 가르는 세 가지 추론

찰스 샌더스 퍼스는 1878년 글에서 콩자루 하나로 추론을 셋으로 갈랐다. 재료는 세 문장이다. 이 자루의 콩은 모두 희다는 규칙.. 이 콩들은 이 자루에서 나왔다는 사례.. 이 콩들은 희다는 결과이다. 셋 중 둘을 쥐고 나머지 하나를 끌어내는 방식이 추론의 종류를 정한다.

규칙과 사례를 쥐고 결과를 끌어내면 연역이다. 자루의 콩이 모두 희고 이 콩들이 자루에서 나왔으니 이 콩들은 희다. 틀릴 수가 없지만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없다. 결론이 이미 전제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례와 결과를 쥐고 규칙을 끌어내면 귀납이다. 자루에서 한 줌 꺼냈더니 전부 희었으니 자루의 콩은 모두 흴 것이다. 표본을 늘릴수록 믿을 만해지지만 끝까지 확률로 남는다.

규칙과 결과를 쥐고 사례를 끌어내면 가추이다. 탁자 위에 흰 콩이 놓여 있고 옆에 흰 콩만 든 자루가 있으니 이 콩들은 저 자루에서 나왔을 것이다. 셋 중 가장 틀리기 쉬운 추론이다. 그리고 셋 중 유일하게 눈앞에 없던 것을 내놓는 추론이다. 탁자 위의 콩과 자루를 잇는 이야기는 관측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가추가 그 이야기를 처음 세운다.

마지막 확보점 위, 길이 없는 바위에 첫 자일을 박는다.
마지막 확보점 위.. 길이 없는 바위에 첫 자일을 박는다.

2. 가설 공간을 여는 것은 가추뿐이다

세 추론을 나란히 놓으면 순서가 드러난다. 연역은 이미 세워진 가설 공간 안에서 형식을 따라 전개하는 일이고.. 귀납은 그 공간에서 나온 결과에 확률적 신뢰를 붙이는 검증이다. 둘 다 무엇을 따질지가 먼저 정해져 있어야 움직인다. 무엇을 따질지를 정하는 것.. 곧 가설 공간 자체를 새로 세우는 연산은 가추 하나뿐이다.

그래서 이 셋의 관계는 가치의 위계가 아니라 작동의 선행 관계이다. 가추가 공간을 열지 않으면 연역은 전개할 대상이 없고 귀납은 수렴할 방향이 없다. 연역과 귀납은 가추가 개척한 영토 위에서만 작동하는 보조 연산이다.

가추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면.. 노이즈 속에서 어긋남을 잡아내고 그것을 인지 지도의 알맞은 자리에 앉히는 행위이다.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관측 가운데 무언가가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채야 하고.. 그 다름을 설명할 틀을 세워야 한다. 이 과정이 앞서야 비로소 정보가 태어난다.

3. 아파고게에서 가추로

이 연산의 윤곽을 처음 잡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오르가논의 분석론 전서에서 아파고게라는 이름으로 대전제는 분명하지만 소전제가 불확실한 추론을 다뤘다. 윤곽까지였고 완성하지는 못했다. 퍼스가 이 대목을 다시 읽어 가추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역과 귀납 옆에 독립된 세 번째 추론으로 세웠다.

퍼스가 세운 것은 이름 하나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가 가추라고 봤고.. 그 통로를 논리학 안에 자리 잡게 했다. 연역과 귀납만으로 짠 논리학은 이미 들어온 것을 정리하는 법은 알려 주지만 무엇이 들어오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등불이 비추는 자리까지만 디딤돌을 놓는다. 바깥은 아직 어둠이다.
등불이 비추는 자리까지만 디딤돌을 놓는다. 바깥은 아직 어둠이다.

4. 가추의 두 조건

어떤 연산이 가추라고 불리려면 두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기존 가설 공간 밖에서 새로운 공간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있는 선택지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을 고르는 일은 공간을 여는 것이 아니다. 둘째.. 세운 가설을 실제 세계에 비추어 갱신하는 되먹임 고리가 닫혀 있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끝내면 그것은 상상이다. 세계에 대 보고 어긋나면 고치는 고리가 닫혀야 가추가 추론이 된다.

두 조건은 따로 놀지 않는다. 공간을 열어도 세계에 대 보지 않으면 연 공간이 맞는지 알 수 없고.. 세계에 대 보는 고리가 있어도 공간을 열지 못하면 확인할 새 가설이 없다. 앞의 조건이 가추를 생산으로 만들고 뒤의 조건이 그 생산을 정보로 만든다.

5. 최종 정답의 부존재

머리의 시구는 지력 삼분법을 처음 정리할 때 코어 명제로 적어 둔 것을 다시 다듬은 것이다. 두 연이 지력의 세 갈래를 나눠 싣는다. 첫째 연은 기반지력과 선별지력이다. 주입된 태그를 나열하는 것은 겉모양만 기반지력이고.. 새의 이름과 새를 보는 것을 가르는 분별이 선별지력의 몫이다. 이 구분은 <인지공리02_3>에서 풀린다.

둘째 연은 대응지력이다. 최종 정답의 부존재란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태.. 스무고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 부존재가 당연시되는 정답이라는 것은 남은 불확실성을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다음 질문의 출발점으로 쓴다는 뜻이다.

가추의 정의가 둘째 연의 두 행에 압축되어 있다. 정답이 이미 있다고 전제하면.. 할 일은 그 정답을 찾아 맞추는 것뿐이고 새 공간은 열리지 않는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리에서만 새 가설을 세울 여지가 생긴다. 가추는 그 여지를 연료로 쓰는 연산이다.

다음 글은 가추가 연 것을 무엇으로 판정하는지를 다룬다. 공간을 여는 연산이 있으면 연 것이 쓸모 있는지 가르는 기준도 있어야 한다. 퍼스는 그 기준도 함께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