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공리05_3>

도달의 서사와 갈라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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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핸들러·거버너와 겉모양이 닮은 구도는 여러 전통에 이미 있지만.. 닮았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으며 갈라지는 지점을 짚어야 거버너 개념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비교의 기준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거버너를 도달해야 할 상태로 두는지.. 이미 작동 가능한 기능으로 두는지이고.. 둘째는 시공 좌표와 자타 경계를 세계의 사실로 전제하는지.. 생존을 위한 설정으로 보는지이다. 이 글이 다루는 영성 전통 쪽은 대체로 첫째 기준에서 갈라진다.

한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럿이다.
한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럿이다.

1. 아드바이타 베단타 - 사크쉰(목격자 의식)

사크쉰은 생멸에 종속되지 않는 관찰자라는 점에서 거버너와 구조적 유사성이 있지만.. 명상과 요가라는 특수한 수단으로 도달해야 하는 수행 목표이고 브라흐만이라는 형이상학적 실체와의 동일시를 전제한다. 사크쉰은 도달의 서사이면서 실체의 서사이고.. 거버너는 도달할 곳이 없고 동일시할 실체도 두지 않는다.

2. 영지주의(그노시스) - 프네우마와 세 부류 인간론

영지주의는 인간을 힐릭(육적 존재, 물질에 매몰).. 사이킥(혼적 존재, 신앙과 윤리로 절제하는 존재).. 프네우마틱(영적 존재, 신성의 파편인 프네우마를 지닌 존재)의 세 부류로 나누며.. 이 삼분법은 화신-핸들러-거버너와 표면적으로 대응해 보인다. 결정적 차이는 프네우마가 물질계에 갇혀 있다가 그노시스를 통해 본향인 플레로마로 귀환해야 하는 실체라는 점에 있다. 탈출과 귀환의 서사는 갇힌 곳과 돌아갈 곳이라는 두 장소를 요구하는데.. 트리거 문장은 지금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하므로 두 장소를 모두 부정한다.

그래도 프네우마틱 인간이 외견상 평범함 속에서 내적으로만 실현된다고 서술되는 대목은.. 켜진산자가 종교적 특수 상태가 아니라 일상에서 작동한다는 규정과 태도상의 접점을 이룬다.

3. 수피즘 - 나프스, 칼브, 루흐의 삼분법

자파르 알사디크 이래의 수피 심리학은 인간을 나프스(낮은 자아, 욕망과 충동에 매인 자아).. 칼브(심장, 균형과 성찰의 자리).. 루흐(영, 신에게 근접한 최상위 층위)로 구분하므로.. 위계적 삼분 구조라는 형식은 화신-핸들러-거버너와 같다. 그러나 루흐는 신과의 근접성이라는 상승 경로의 끝점이어서 도달의 서사에 속하고.. 나프스를 침묵시키고 루흐를 드러낸다는 수행 목표는 거버너가 이미 작동 가능한 상태로 있다는 전제와 대비된다.

4. 카발라 - 루리아의 니초초트

16세기 이삭 루리아의 이론은 그릇이 깨지며(셰비라트 하켈림) 신성한 빛의 파편(니초초트)이 물질 속에 흩어졌다고 보는데.. 이는 영지주의의 프네우마 개념과 구조적으로 거의 같고 흩어진 빛을 모아 회복(티쿤)한다는 구원사적 서사도 공유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와 같은 이유로 거버너 개념과 갈라진다.

5. 족첸(대원만) - 릭빠

티베트 족첸 전통의 릭빠(순수 인식, 본연의 자각)는 새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이미 항상 있어 온 근본 바탕(gzhi, 근)으로 규정되며 스승의 직지(direct introduction)를 통해 문득 알아차려지므로.. 트리거 문장을 통한 거버너의 즉각적 활성화와 서사 구조가 같다. 갈라지는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대다수 족첸 교설에서 직지는 인증된 스승의 가피를 필수 경로로 요구하는데.. 트리거는 특정 권위 없이 문장 자체의 인식만으로 작동한다. 둘째로 릭빠는 공성과 광명이 불이를 이루는 궁극적 실재로 규정되어 존재론적 절대자의 위상을 받지만.. 거버너는 실재의 이름이 아니라 2차 표상이라는 기능의 이름이다.

6. 정리

구원 서사 계열인 베단타.. 영지주의.. 수피즘.. 카발라는 벗어나야 할 곳과 돌아갈 곳을 상정하기 때문에 트리거 문장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족첸의 릭빠는 도달이 아닌 재인이라는 구도를 공유해 가장 가깝게 닿지만 스승 매개와 절대자 존재론을 떨쳐 내지 못한다. 거버너는 갈 곳도.. 데려다줄 스승도.. 동일시할 절대자도 두지 않는다.

문을 열어도 같은 들판이다.
문을 열어도 같은 들판이다.

갈 곳이 없으면 도달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