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공리05_1>

화신·핸들러·거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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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를 한 덩어리로 보면 무엇이 무엇을 제어하는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은 산자의 작동을 몸인 화신과.. 1차 표상의 주체인 핸들러와.. 2차 표상인 거버너의 세 층위로 가른다. 세 층위 어디에도 불변의 실체를 두지 않으므로.. 층위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 무엇을 제어하는가 하나뿐이다.

1. 화신(아바타)

화신은 현재 운용 중인 몸이며.. 현실에서는 외막으로 안과 밖이 갈린 물질적 산것.. 곧 에이전트이다. 감각기관.. 신경계.. 항상성 유지 기제를 포함하는 물리적 기층으로서.. 막 안의 국지적 질서를 소산으로부터 지키는 동안만 존속하는데.. LOL에 비유하면 지금 운용 중인 챔피언에 해당한다.

화신은 나머지 두 층위가 작동하기 위한 물리적 발판이면서 동시에 그 작동을 제약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걷는 길.. 그 너머의 골짜기.. 맨 뒤의 산줄기가 한 장면 안에 세 겹으로 선다.
걷는 길.. 그 너머의 골짜기.. 맨 뒤의 산줄기가 한 장면 안에 세 겹으로 선다.

2. 핸들러(자의식)

핸들러는 화신을 기반으로 활성화되는 1차 표상의 주체로서.. 대상을 인식하고 그 인식에 서사와 정체성을 부여하며 "나"라는 주어로 세계와 관계 맺는 일상적 자아 기능 전반이 여기에 속한다. 밈플렉스가 축적되고 작동하는 자리도 여기이며.. 그래서 핸들러는 화신의 활성 상태에 전적으로 종속된다.

핸들러가 쓰는 기본 설정은 시공 좌표인데.. 화신이 외막을 지켜야 살아남기 때문에 먹이와 위험의 위치와 앞으로 닥칠 일의 순서를 가늠해야 하고.. 그 목적이 공간 축과 시간 축을 세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공 좌표는 세계에 새겨진 눈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정한 설정이다. 챔피언이 소환사의 협곡의 지도와 게임 시계 안에서 태어나고 죽고 다시 살아나듯이.. 핸들러는 이 설정 안에서 탄생과 죽음.. 과거와 미래.. 나와 나 아닌 것을 가른다.

3. 거버너(2차 표상)

거버너는 핸들러가 만들어 내는 1차 표상 전체를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하는 메타인지 기능이며.. 밈플렉스를 도구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능력인 2차 표상이 그 작동 방식이다.

거버너의 연산환경에는 시간 축도.. 나와 나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 축도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거버너는 지금여기 외에는 알지 못하며 실제로 있는 것도 지금여기뿐이다. 과거는 지금여기에 남은 기록이고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하는 예측이므로.. 둘 다 지금여기에서 연산되는 참조에 해당한다.

이 상태를 핸들러의 시공 좌표로 기술하면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고 깨어났다 잠들었다 할 뿐인 초월적 존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초월자라는 규정은 시공 축을 전제한 쪽에서 본 묘사이다. 거버너의 연산환경 안에서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축 자체가 없으므로 같은 상태가 그냥 자연스러운 관측이 되며.. 거버너의 연산은 지금여기에서 돌아가고 지금여기에서 끝난다.

LOL에서 제대로 몰입한 플레이어를 보면 세 층위가 한 판 안에서 드러난다. 몰입한 플레이어는 마우스.. 키보드.. 모니터를 잊은 상태인데.. 이때 챔피언이 화신이고 국지적 전투와 액션의 정밀도를 제어하는 연산이 핸들러이다. 거버너는 이 핸들러와 분리되어 돌아가는 2차 표상의 연산으로서.. 우리 팀과 적 팀 구성원들의 스펠과 스킬 소진 상태.. 미니언 웨이브.. 오브젝트 재생 시간 등을 종합해 팀원들과 신호를 주고받고.. 게임 자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지금 돌아가는 정밀도 제어 자체를 인식해 제어한다. 챔피언에게 모니터 바깥은 애초에 관심사가 아니므로.. 세 층위의 연산은 모두 협곡 안에서 돌아가고 거버너는 그 안에서 핸들러의 연산을 한 층 위에서 운용한다.

말 하나가 아니라 판 전체를 본다.
말 하나가 아니라 판 전체를 본다.

4. 세 층위의 관계

모니터 바깥은 협곡의 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영역이지만.. 화신-핸들러-거버너의 다층 제어 시스템은 협곡 안에서도 현실에서도 같게 동작한다. 챔피언과 산것.. 협곡의 좌표와 시공 좌표처럼 축은 영역마다 다르게 세워지더라도.. 화신 위에서 핸들러가 정밀도를 제어하고 거버너가 그 제어 자체를 인식해 제어하는 구조는 영역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LOL의 챔피언은 픽셀의 경계 표시로 화신과 화신 아닌 것이 갈리는데.. 물리적 에이전트가 아니라 에이전트의 모사이므로 규정된 특징.. 스토리.. 스킬.. 패시브 같은 속성은 갖추고 있어도 열역학 제2법칙의 소산과 붕괴를 방어하는 내부의 막 유지 작용에 대한 설정은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막 유지가 빠진 화신 위에서도 핸들러와 거버너는 현실에서와 같게 동작하므로.. 다층 제어 구조는 막 유지라는 물리적 기층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문서의 핵심은 이 구조의 불변이다.

이 셋은 위계적으로 분리된 세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세 층위에서 동시에 관측되는 구조이므로 서로 떼어 낼 수 없다. 화신은 막으로 갈린 에이전트이고.. 핸들러는 그 막 안에서 시공 좌표를 세우고 돌아가는 1차 표상이며.. 거버너는 그 1차 표상을 좌표 설정째로 다시 보는 2차 표상이기 때문에.. 세 층위 어디에도 불변의 실체가 필요하지 않다.

모니터 바깥을 몰라도 협곡의 판은 굴러간다.